
마더보드와 칩셋: 컴퓨터의 신경망
마더보드는 그냥 모든 부품을 꽂는 판때기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칩셋'이 무엇인지 알고 나서야 왜 비싼 메인보드가 필요한지 깨달았습니다.

마더보드는 그냥 모든 부품을 꽂는 판때기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칩셋'이 무엇인지 알고 나서야 왜 비싼 메인보드가 필요한지 깨달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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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P판과 USB. 물리적으로 회전하는 판(Disc)이 왜 느릴 수밖에 없는지, 그리고 SSD가 어떻게 서버의 처리량을 100배로 만들었는지 파헤쳐봤습니다.

인텔 CPU를 업그레이드할 때 황당한 경험을 했습니다. 소켓 모양(LGA 1700)이 똑같은데, 새 CPU가 마더보드에서 인식이 안 된다는 겁니다. 알고 보니 '칩셋(Chipset)'이 지원하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아니 그냥 전선만 연결해 주는 판때기 아니었어?" 그때까지 저는 마더보드를 그냥 '부품 꽂는 판' 정도로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마더보드는 판이 아니라 '신경망'이었고, 칩셋은 '척수' 같은 존재였습니다.
처음엔 "메인보드 비싼 거 사면 뭐 하냐, 어차피 CPU가 연산하는데" 이런 마인드였습니다. 그런데 i9-13900K를 H610 메인보드에 꽂았다가 서버가 과열로 셧다운되는 걸 겪고 나니, 결국 몸통이 허약하면 뇌가 죽는다는 걸 배웠습니다.
마더보드(Motherboard, 메인보드)는 컴퓨터라는 도시의 기반 시설(도로망, 전력망, 통신망)입니다. CPU, RAM, 그래픽카드, SSD 등 모든 부품이 이 위에서 대화를 나눕니다. 처음엔 "그냥 모든 걸 연결해 주는 판"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직접 마더보드를 바꿔보니 이게 얼마나 중요한지 피부로 와닿았습니다.
VRM(Voltage Regulator Module)은 마더보드의 변전소입니다. 파워서플라이에서 들어오는 12V 전기를 CPU가 먹을 수 있는 1V 수준으로 낮춰주고, 전압을 안정적으로 공급합니다. 이게 부실하면 CPU가 제 성능을 못 내거나, 심하면 터집니다.
제가 H610 메인보드에 i9-13900K를 꽂았을 때, CPU는 멀쩡한데 VRM 방열판이 뜨거워서 손을 댈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알고 보니 H610은 4+1 Phase VRM인데, i9-13900K는 최소 12+1 Phase가 필요했습니다. 결국 전원부가 과부하로 죽어서 마더보드를 통째로 갈아야 했습니다.
VRM Phase란 전력을 여러 갈래로 나눠서 분산 공급하는 구조입니다. 12+1 Phase는 CPU에 12개 라인, 내장그래픽에 1개 라인을 따로 공급한다는 뜻입니다. Phase가 많을수록 전력 분산이 잘 되고, 발열이 줄어들고, 오버클럭 여유가 생깁니다.
예를 들어 100W를 공급해야 하는 상황에서:
오버클럭을 하는 유저들이 Z790 같은 고급 보드를 찾는 이유가, 바로 이 VRM Phase가 18+1, 20+2처럼 여유롭기 때문입니다.
PCIe(PCI Express) 슬롯은 마더보드의 고속도로입니다. 그래픽카드, NVMe SSD, 사운드카드 등 고속 데이터 전송이 필요한 부품들이 여기에 꽂힙니다.
PCIe는 레인(Lane)이라는 개념으로 속도를 나타냅니다. x1, x4, x8, x16처럼 쓰는데, 숫자가 클수록 차선이 많은 고속도로입니다.
| PCIe 버전 | x1 | x4 | x8 | x16 |
|---|---|---|---|---|
| PCIe 3.0 | 985 MB/s | 3.9 GB/s | 7.9 GB/s | 15.8 GB/s |
| PCIe 4.0 | 1.97 GB/s | 7.9 GB/s | 15.8 GB/s | 31.5 GB/s |
| PCIe 5.0 | 3.94 GB/s | 15.8 GB/s | 31.5 GB/s | 63 GB/s |
그래픽카드는 보통 x16 슬롯에 꽂고, NVMe SSD는 M.2 슬롯(x4)에 꽂습니다. 제가 그래픽카드를 두 번째 슬롯에 꽂았다가 성능이 반토막 난 적이 있는데, 알고 보니 두 번째 슬롯은 x8이었습니다. 첫 번째 슬롯은 CPU와 직통으로 연결된 x16이고, 나머지는 칩셋을 거쳐가는 x8이나 x4인 경우가 많습니다.
마더보드 크기에도 표준이 있습니다. ATX, mATX(Micro ATX), ITX(Mini ITX) 순으로 작아집니다.
| 폼 팩터 | 크기 (mm) | PCIe 슬롯 | RAM 슬롯 | 용도 |
|---|---|---|---|---|
| ATX | 305 x 244 | 7개 | 4개 | 데스크톱, 워크스테이션 |
| mATX | 244 x 244 | 4개 | 4개 | 가성비 데스크톱 |
| ITX | 170 x 170 | 1개 | 2개 | 소형 PC, NAS |
처음엔 "작으면 좋지, 케이스도 작아지고" 이렇게 생각했는데, ITX 보드를 써보니 확장성이 없어서 답답하더군요. 그래픽카드 1개 꽂으면 끝입니다. 사운드카드, 캡처카드 추가 불가. RAM도 2슬롯이라 최대 64GB(32GB x 2)까지만 됩니다.
반면 ATX는 슬롯이 여유로워서 그래픽카드 2개, NVMe SSD 3개, 사운드카드 1개 이런 식으로 확장이 자유롭습니다. 하지만 케이스가 크고 무겁습니다.
결국 저는 mATX로 정착했습니다. 크기와 확장성의 균형이 딱 맞더군요.
서버용 마더보드는 일반 데스크톱과 차원이 다릅니다. 듀얼 소켓(Dual Socket)이라고, CPU를 2개 꽂을 수 있습니다. 물리적으로 코어가 2배가 되는 겁니다.
예를 들어 인텔 Xeon Gold 6342(24코어)를 2개 꽂으면, 총 48코어 96스레드가 됩니다. 데이터베이스 서버나 AI 학습 서버처럼 코어가 많이 필요한 곳에서 씁니다.
또한 서버 보드는 ECC RAM(Error-Correcting Code RAM)을 지원합니다. ECC는 메모리 오류를 자동으로 감지하고 수정하는 기능입니다. 일반 RAM은 비트가 뒤집혀도 모르고 넘어가는데, ECC는 이걸 잡아냅니다.
은행, 병원, 클라우드 서버처럼 데이터 무결성이 중요한 곳에서는 ECC RAM이 필수입니다. 대신 가격이 일반 RAM보다 2배 이상 비쌉니다.
그리고 서버 보드에는 IPMI(Intelligent Platform Management Interface) 또는 BMC(Baseboard Management Controller)가 달려 있습니다. 이건 "서버에 직접 가지 않고도 원격으로 전원 켜고, BIOS 설정하고, 화면 보는" 기능입니다. IDC에 서버를 두고 운영할 때 필수입니다.
그럼 칩셋(Chipset)은 뭘까요? (Z790, B760 같은 이름들) 칩셋은 '교통 통제 센터' 또는 '척수' 역할을 합니다.
CPU는 너무 고귀하고 바빠서 모든 부품과 직접 대화하지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RAM과 그래픽카드(첫 번째 슬롯) 정도만 직접 챙깁니다. 나머지 자질구레한 것들(USB, 사운드, SATA 하드, 랜카드 등)은 칩셋이 모아서 정리한 뒤 CPU에게 보고합니다.
옛날 마더보드(2000년대)에는 칩셋이 2개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Northbridge는 CPU와 가까워야 해서 열이 많이 나고, 방열판이 컸습니다. 제가 2005년쯤에 쓰던 메인보드에 Northbridge 방열판에 팬이 달려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2008년쯤 인텔이 메모리 컨트롤러를 CPU 안에 집어넣으면서 Northbridge가 사라졌습니다. 이제 CPU가 RAM과 직접 대화하니, 굳이 중간에 칩을 둘 필요가 없어진 겁니다. 그래서 현대 마더보드는 칩셋이 1개만 달려 있고, 이게 예전의 Southbridge 역할을 합니다.
인텔은 이걸 PCH(Platform Controller Hub)라고 부릅니다. AMD는 그냥 칩셋(Chipset)이라고 부릅니다.
인텔 칩셋은 등급이 나뉩니다. (예: Z790, B760, H610) 앞 글자가 등급이고, 숫자는 세대를 나타냅니다.
| 칩셋 등급 | 오버클럭 | PCIe 레인 | USB | SATA | 가격 | 타겟 유저 |
|---|---|---|---|---|---|---|
| Z (고급형) | 지원 | 많음 (28개) | 많음 | 8개 | 비쌈 | 게이머, 오버클러커 |
| B (중급형) | 불가 | 중간 (12개) | 중간 | 6개 | 중간 | 일반 유저 |
| H (보급형) | 불가 | 적음 (6개) | 적음 | 4개 | 저렴 | 사무용, 저가 빌드 |
저는 처음에 "오버클럭 안 할 건데 굳이 Z보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써보니 PCIe 레인 수가 중요하더군요.
예를 들어 NVMe SSD 2개(각 x4), 그래픽카드 1개(x16), 사운드카드 1개(x1)를 꽂으면:
결국 저는 B760으로 타협했습니다. 오버클럭은 안 하지만, SSD 2개 + 그래픽카드는 쓸 거니까요.
PCIe 레인은 CPU에서 직접 나오는 레인과 칩셋에서 나오는 레인으로 나뉩니다.
인텔 13세대(Raptor Lake)를 예로 들면:
CPU 레인은 직통이라 빠르고, 칩셋 레인은 CPU와 칩셋 사이의 DMI(Direct Media Interface) 링크를 거쳐야 해서 약간 느립니다. DMI는 x8 속도라서, 칩셋에 연결된 모든 장치가 이 x8 링크를 공유합니다.
예를 들어 칩셋에 NVMe SSD 3개(각 x4)를 꽂으면:
그래서 제일 빠른 SSD는 CPU 직통 M.2 슬롯에 꽂고, 나머지는 칩셋 슬롯에 꽂는 게 정석입니다.
리눅스에서는 lspci 명령어로 PCIe 장치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lspci -tv
출력 예시:
-[0000:00]-+-00.0 Intel Corporation 13th Gen Core Processor Host Bridge/DRAM
+-01.0-[01]----00.0 NVIDIA Corporation GA102 [GeForce RTX 3090]
+-06.0-[02]----00.0 Samsung Electronics Co Ltd NVMe SSD Controller PM9A1
+-14.0 Intel Corporation Alder Lake-S PCH USB 3.2 Gen 2x2 Controller
+-17.0 Intel Corporation Alder Lake-S PCH SATA Controller
+-1f.0 Intel Corporation Z690 Chipset LPC/eSPI Controller
\-1f.3 Intel Corporation Alder Lake-S HD Audio Controller
이걸 보면:
00.0: CPU (Host Bridge)01.0: 그래픽카드 (NVIDIA RTX 3090) → CPU 직통 x16 슬롯06.0: NVMe SSD (Samsung PM9A1) → CPU 직통 M.2 슬롯14.0: USB 컨트롤러 → 칩셋17.0: SATA 컨트롤러 → 칩셋1f.0: 칩셋 (Z690 PCH)1f.3: 사운드카드 → 칩셋그래픽카드와 첫 NVMe는 CPU에 직접 붙어 있고, USB/SATA/사운드는 칩셋을 거쳐가는 게 보입니다.
dmidecode는 BIOS에서 읽은 하드웨어 정보를 보여줍니다.
sudo dmidecode -t baseboard
출력 예시:
Handle 0x0002, DMI type 2, 15 bytes
Base Board Information
Manufacturer: ASUSTeK COMPUTER INC.
Product Name: ROG MAXIMUS Z790 HERO
Version: Rev 1.xx
Serial Number: 231234567890
Asset Tag: Default string
Features:
Board is a hosting board
Board is replaceable
Location In Chassis: Default string
Chassis Handle: 0x0003
Type: Motherboard
이걸 보면 제 메인보드가 ASUS ROG MAXIMUS Z790 HERO인 걸 알 수 있습니다.
VRM 정보는 sensors 명령어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sensors
출력 예시:
nct6798-isa-0290
Adapter: ISA adapter
in0: 440.00 mV (min = +0.00 V, max = +1.74 V)
in1: 1.01 V (min = +0.00 V, max = +0.00 V) ALARM
in2: 3.34 V (min = +0.00 V, max = +0.00 V) ALARM
...
VRM Temp: +42.0°C (high = +80.0°C, hyst = +75.0°C)
(crit = +100.0°C)
VRM Temp이 42도면 건강합니다. 80도 넘어가면 위험합니다.
이걸 알고 나니 PCIe 레인(Lane)이라는 개념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NVMe SSD를 4개나 꽂을 수 있다"고 자랑하는 보드를 샀는데, 막상 꽂으니 속도가 반토막이 났습니다.
알고 보니 칩셋이 처리할 수 있는 차선(Lane)의 총량이 정해져 있었습니다. SSD를 많이 꽂으니 칩셋이 "야, 도로 꽉 찼어. 너네 속도 절반으로 줄여"라고 교통 정리를 해버린 겁니다. 결국 비싼 보드(Z보드)는 이 차선이 널널해서 비싼 거였습니다.
제가 겪었던 상황을 정리하면:
메인보드 설명서를 보니 이런 표가 있었습니다:
| M.2 슬롯 사용 | 1번 | 2번 | 3번 | 4번 |
|---|---|---|---|---|
| 1개 사용 | x4 | - | - | - |
| 2개 사용 | x4 | x4 | - | - |
| 3개 사용 | x4 | x4 | x2 | - |
| 4개 사용 | x4 | x2 | x2 | x2 |
칩셋 레인이 부족해서 나눠 쓰는 겁니다. Z790 같은 고급 보드는 칩셋 레인이 28개라서 4개 다 x4로 쓸 수 있습니다.
| 구분 | 마더보드 (Motherboard) | 칩셋 (Chipset) |
|---|---|---|
| 비유 | 몸통, 혈관, 신경망 | 척수, 신경절 (중간 관리자) |
| 역할 | 부품 간 물리적 연결 및 전력 공급 | 데이터 흐름 제어, 주변기기 관리 |
| 선택 기준 | 전원부(튼튼함), 확장성(슬롯 개수) | 오버클럭 지원 여부, PCIe 레인 수 |
CPU가 '뇌'라면, 마더보드와 칩셋은 '몸'입니다. 뇌가 아무리 천재라도(i9-13900K), 몸이 허약하면(저가형 보드) 제 실력을 못 내거나 쓰러집니다.
결국 마더보드와 칩셋을 이해하고 나니, 컴퓨터 견적을 짤 때 "보드는 싼 거 써도 돼"라는 말이 얼마나 위험한지 와닿았습니다. 마더보드는 그냥 판이 아니라, 신경망이자 교통망이자 전력망입니다. 칩셋은 단순히 "Z냐 B냐"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몇 개의 고속 장치를 쓸 건지를 결정하는 핵심입니다.
Northbridge와 Southbridge로 나뉘던 옛날 구조에서, CPU가 메모리 컨트롤러를 통합하면서 PCH 하나로 단순화된 역사도 흥미로웠습니다. VRM Phase 개념을 알고 나니, 오버클럭을 안 하더라도 고급 보드가 왜 필요한지 받아들였습니다. 서버 보드의 듀얼 소켓, ECC RAM, IPMI 같은 기능들은 나중에 IDC에 서버를 둘 때 반드시 필요할 거라고 정리해봅니다.
그리고 lspci와 dmidecode 같은 도구로 실제 내 마더보드 구조를 확인해보니, 이론이 현실로 연결되는 느낌이 확 들어왔습니다.